2010/08/19 11:30

사회자본이론과 경제사회학 이론


사회자본이론은 최근 사회학의 가장 빈번한 연구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경제적 과정을 사회적 메커니즘으로 설명하는 경제사회학은 사회자본에 대한 경험적 검증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해온 분야이다. 이 글에서는 최근의 경제사회학 연구들을 특징짓는 두 가지 이론적 문제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 사회자본이론과 경제사회학  

사회자본이론 (Social Capital Theory) 은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오래 전부터 많은 경험 연구들의 검증 대상이 되어 왔다. 개인이 자신의 사회적 관계를 자본 삼아 특정한 이익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일견 사회학 일반의 비판적‐도덕적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사회자본은 이를 보유하고 있는 개인의 선택과 통제를 벗어나 만들어지는 것이며, 사회자본을 통한 개인의 이익은 이 개인이 속한 집단의 이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결국 사회자본이론은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도덕이 어떻게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사회학의 고전적 문제들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사회자본에 대한 경험 연구에서 이 추상적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시장에서의 사회자본 효과를 연구하는 경제사회학 연구들은 과연 사회자본이 얼마만큼의 이익을 가져오는가라는 좁은 질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비좁음 때문에 종종 경제사회학 연구자들의 방법론적 이력이나 출신 학교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경제사회학의 이러한 주제 선택에는 중요한 이론적 이유가 자리잡고 있다.  

“사회자본”이라는 개념의 기원은 20세기 초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 대다수의 경험 연구에서 인용되는 방식으로 정의된 것은 제임스 콜만이 1988년 미국사회학지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에 발표한 “인적자본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사회자본 (Social Capital in the Creation of Human Capital)” 이라는 논문에서였다. 이 제목은 매우 야심찬 것이었다. 왜냐하면 콜만은 여기서 사회자본을 “인적자본”에 필적하는 개념으로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콜만의 지적 경쟁자이자 협력자였던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인적자본이론의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인적자본이론의 핵심 변수인 교육년수는 사회과학 연구 일반에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통제 변수들 중 하나이다. 콜만은 바로 그 인적자본의 수준으로 사회자본 개념을 일반화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사회자본이론을 경제학 이론처럼 규범‐연역적 (normative‐deductive) 체계로까지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콜만은 이후 다른 논문에서 20세기 사회학이 경제학으로부터 받은 좋은 영향들 중 하나가 “평형상태 (equilibrium)”에 대한 이해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콜만 자신이 개발하고 제자인 피터 마스덴이 정리한 연결망에서의 권력 측정 방식은 개인간의 교환이 무한히 반복되었을 때, 모든 개인들의 선택이 하나로 통일되는 과정을 모델화했다. 여기서 무한히 반복되는 교환이란 매우 안정적인 교환의 구조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콜만 사후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이 완결된 연역적 이론 체계로 발전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놀랍게도 구조와 개인에 대한 사회학의 일반적 가정들이 경험 연구들 속에서 자꾸 흔들렸기 때문이다. 시장에서의 사회자본 내지는 사회구조의 효과에 대한 경제사회학자들의 집착은 바로 “구조와 행위”에 대한 사회학적인 가정들을 확증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이를 위한 노력들은 일찍이 월터 월러스가 예견했던 것처럼 “필연적으로 논쟁적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 구조 

인적자본이론은 전형적인 개인주의적 설명이다. 1950년대 미국 센서스 데이터를 분석한 게리 베커에 따르면, 개인의 미래 소득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교육에 투자를 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여기서 핵심은 교육에 대한 투자가 바로 그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단순한 요인은 오히려 그 단순성 때문에 이후 일반 사회 연구에서 “오컴의 면도날”과 같은 지위를 얻었다. 교육은 현재에도 개인의 사회‐경제적 성과에 대한 가장 강력한 예측을 제공하며, 따라서 다른 요인을 탐구하는 모델들은 필수적으로 교육을 통제한 후에 자신의 유의성을 증명해야 한다.  

인적자본이론의 개인주의적인 설명에 대한 구조주의적 비판은 흥미롭게도 사회학이 아닌 경제학 내부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 미국 센서스 데이터를 분석한 MIT의 레스터 써로우는 미국 사회의 교육수준의 분포와 소득의 분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교육 이외의 요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70‐80년대 사회학자들의 노동시장 연구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 들었다. 공석사슬 (Vacancy Chain) 이론이나 내부노동시장이론은 개인이 자신의 가치를 높여 수입 증대를 가져오려는 일련의 행동들이 곧바로 원하는 소득 수준을 실현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 시장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회의 구조”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결국 기회구조의 제약에 직면한 노동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높은 임금이 아니라 기회 자체, 즉 일자리이다. 이처럼 사회학자들은 구직, 이직, 퇴직 같은 노동자 개인의 사건들이 사실상 이들의 선택권 바깥에 존재하는 기회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회학자들이 소개한 노동시장의 역사적‐제도적 메커니즘들은 일자리 수나 승진 사다리의 형태가 얼마나 노동자들의 소득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경험적으로 설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처럼 성공적인 신뢰성 (reliability) 검증에도 불구하고 사회학적 접근의 타당성 (validity) 은 오히려 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경험 연구들 결과, 일자리 수나 승진 사다리가 “개인의 통제를 벗어난 구조”가 아니라 “개인에 의해 전략적으로 설계된 제도”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를 설계하는 개인들은 바로 고용주였다. 사회학자들이 가정해 왔던 노동시장의 구조는 사실상 고용주가 의도한 결과이고, 노동자들의 미래 소득은 결국 다른 개인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따라서 사회 현상을 개인의 의도로부터 독립된 구조로 설명하겠다는 사회학적 기획은 타당성을 잃었다.

물론 구조주의적 설명이 가지는 이와 같은 비판이 사회학 전반에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과 경험 연구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몇몇 예민한 사회학자들은 이 문제를 대담한 방식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로저 굴드는 자신의 유고에서 경제학적 설명에 대비하여 사회학적 설명 방식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그에 따르면 사회학자들은 사실상 사회 구조를 “이해 집단의 상호작용에 의해 촉발”되는 것으로 여겨왔으며, 이를 통해 사회적 자원‐보상이 개인의 능력과 무관한 방식으로 분배된다고 설명해왔다. 굴드의 통찰은 2000년대 시장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들이 가지는 두 가지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는 구조를 단단한 건축물 같은 이미지로 보는 대신, 상호 작용 자체에서 구조를 찾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구조적 패러미터보다 사건 (event) 이나 시간에 따라 민감하게 변화하는 기회들을 측정하려는 경험 연구들에서 잘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기본적으로 경제학의 게임 이론적 접근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사회학의 독창적인 접근이라고 하기 어렵다. 

또 다른 접근은 좀 더 전통적인 방식으로 개인으로부터 독립된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는 개인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되, 실제로 연구 대상이 되는 사회적 과정 바깥에 존재하는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소위 계약의 비계약적 기반을 찾는 이 접근 방식은 경제사회학 연구에 있어서는 경제적 과정 (economic process) 외부에 존재하는 사회적 과정을 찾고, 거기서 사회자본을 측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 행위 

사회자본이론에 기반한 경제사회학 연구들이 뱔견한 경제 외부의 사회적 과정들에는 상사와의 관계, 직장내 친구 관계, 조언자의 수, 또래집단의 규모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관계들을 통해 획득하는 사회자본에는 정보, 정서적 안정, 후원, 그리고 업무활동에 대한 객관적 평가 등이 있다. 이 사회자본을 이용해 직장 내 노동자들은 더 높은 봉급과 빠른 승진을 기대할 수 있다. 경험 연구들을 통해 축적된 이와 같은 발견들은 사회학적 연구가 일반 경영 연구의 한 축으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회자본이 조직 효율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데이빗 크랙하르트의 HBR 케이스는 경제사회학이 경영학과 커리큘럼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경영학 분야로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한 경제사회학자들의 성과는 최근에 이르러 몇 가지 심각한 이론적 비판에 직면했다. 하나는 사회자본이 너무 많은 곳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세기가 바뀔 무렵 세계은행 특별 보고서의 대상이 될 정도로 학계 일반의 주목을 받았던 사회자본은 그 인기만큼이나 지나치게 다양한 경험 맥락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과잉 융통성 (over‐versatility)”의 함정에 빠진 사회자본이론은 2007년 개인의 비만도를 예측하는 연구에까지 이르렀다. 비만이 사회적 관계를 통해 전파된다는 이 놀라운 주장은 현재 선택편향 (selection bias)의 오류에 빠진 것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사회자본을 비사회적 관계로 확장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대표적인 오류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본 본연의 역할에 반하는 사회자본이 논의되면서 불거졌다. 발 버리스의 2006년 교수 시장 연구는 미국 대학의 사회학과에서 교수를 채용할 때 교수 후보자의 성과와 상관 없이 출신 학교의 평판만을 고려해 채용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학의 평판은 그 대학이 다른 대학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 정해지는 사회자본이다. 즉, 사회자본이 구직 시장에 나선 박사들의 품질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자본이론이 여전히 구조‐기능주의의 전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본다. 이 시각에 따르자면, 경제과정 외부에 존재하는 사회적 과정은 경제적 합리성을 해칠 정도로 개인의 선택을 제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에즈라 쥬커만은 경제과정을 외부의 사회적 과정으로 환원시키는 해석들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경제 행위자의 생산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한해서 사회자본이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쥬커만 자신도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의무 사이에서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학적 행위 이론”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마크 그라노베터의 “과잉사회화와 저사회화 사이”, 브라이언 우지의 “배태성의 모순” 같은 개념들이 사회자본을 통한 경제과정의 설명이 어느 쪽으로도 치우쳐서는 안된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을뿐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현재 사회자본이론과 경제사회학의 논쟁점들을 두고 봤을 때, 앞으로 이 분야가 추구해야 할 이론적 지향점은 명확해 보인다. 하나는 개인의 통제를 벗어난 구조가 어디 있는가를 찾아내어 그 패러미터를 측정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구조가 경제적 합리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제와 사회 사이에서 갈등하는 개인이 아니라 경제적 합리성을 위해 자신의 사회자본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합리적 개인을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행위자에 대한 가정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경험 모델의 정교화가 필수적으로 따라야 할 것이다.


덧글

  • 부정변증법 2010/08/20 00:31 #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퍼트냄의 사회적자본 에 대한 글인줄 알고 들어왔다가 많이 당황했습니다.
    일단 제 소견으로는 경험모델이 정교화되기 위해서는 사회자본의 개념이 어떤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관계망의 양적 개념인지 아니면 질적개념인지, 혹은 관계망으로부터 얻게되는 효과인지가 보다 정밀하게 정의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즉 만약 관계망에 얽힌 사람이 노숙자 10명인 사람과, 얽힌 사람이 한 명 뿐이지만 대통령인 사람 중 누가 사회자본이 더 크냐의 문제가 되겠는데, 포스팅 내용상으로는 후자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하지만 포스팅 앞부분에 소개한 이론에서는 상호작용의 밀도와 안정적인 구조를 사회자본으로 쓰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연결망 분석을 몇번 해 보다가 좌절한 것도, 연결망의 그림은 그려지는데, 각 노드들의 속성들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그리고 링크들간의 질적인 차이가 과연 없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다음 결과가 기다려집니다. 어떻게 되었나요?
  • 시간 2010/08/20 22:18 #

    상당히 많은 점들을 지적하셔서 댓글로 답을 다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몇 가지 핵심에 대해서만 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노숙자와 대통령 1
    노숙자 10명과 청와대 직원 10명을 각기 다른 공간에서 일정 기간 동안 생활해 보도록 하죠. 그러면 이들 사이의 관계가 변화-진화하면서 지위의 분화가 발생합니다. 연결망 분석의 이론적 관심 중 하나는 인간관계들을 매개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불평등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체로 노숙자간 불평등의 구조와 청와대 직원들 간의 그것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이를 통계적으로 검증하게 해주는 극히 최근에 개발 되었습니다.

    * 노숙자와 대통령 2
    만약 우리 사회 전체를 연결망으로 그릴 수 있다면 님께서 말씀하신 문제가 보일 것입니다. 대통령 한사람 먼 알고 있는 사람보다 노숙자 10명을 알고 있는 사람의 사회자본이 크게 측정되는 문제죠.
    그러나 이는 잘못된 비판입니다. 그 이유는 퍼트남식으로 사회자본 데이터를 서베이로 모으는 경우 얻을 수있는 indicator는 사람수 뿐이죠. 그러나 한 사회 전체 (교실일 수도 있고 국가 일 수도 있는)에 대한 완전한 자료 (complete network data)를 분석하면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맺고 있는 관계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노숙자 10인의 전체 지인 보다 대통령 1인의 지인수가 훨씬 많을 겁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친구가 양적으로 높은 사회자본을 가진 곳으로 측정됩니다.
    Tie의 quality에 대해서는 이와는 다른 문제가 있죠. 가령 romantic한 관계와 affective한 관계를 구분하냐고 묻는다면 안한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습니다. 우선은 이게 이론적으로 흥미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사회이론들과 관련해 사적-공적, 협동-경쟁 등의 구분은 연결망 분석에서 구분하고 있습니다.

    아이폰으로 답을 쓰다보니 여러모로 답답한 답변이 된 점 이해해 주시길 …
  • 부정변증법 2010/08/21 07:49 #

    상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론사회학이랑 써베이 연구에만 너무 치중하고, 한국에만 있다 보니 교환이론, 연결망 이론 쪽으로는 많이 취약합니다. 교환이론 계열, 상호작용론 계열은 한국에서 널리 알려지거나 연구되지 않는 풍토라서...그러다 보니 최근의 사회학을 동향을 많이 놓쳤다는 초조함 같은 것이 있어서 이포스팅을 보고 자극을 받아 주제넘게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1. 결국 퍼트냄 식의 단순한 링크수의 누적이 아닌 그 효과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회적 자본을 이해하면 되는지요?

    2. 허브를 알고 있느냐, 단순한 노드를 알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는지요? 그렇다면 본인에게 직접 연결된 링크 뿐 아니라 두다리, 세다리를 걸치더라도 결국은 연결되는 모든 노드수, 혹은 링크수가 추산된다는 의미가 된다고 이해하면 되는지요?

    3.최근 개발되었다는 기법은 링크의 속성에 따라 링크간의 거리에 가중치(단축 혹은 연장)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는지요. 직접 설명하기 번거로우시면 그냥 해당 논문의 링크만 제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연결망 이론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를 그린다 함은 두 가지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1). X인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을 경우 그들의 링크가 예를 들면 "멱함수"를 이루게 됨을 보여주려는 것, 즉 사회적 자본 자체의 불평등한 분포를 보여 주고, 사회적 자본의 불평등이 이루어지는 "일반균형이론"을 세우기

    2) 여기서 더 나아가 허브의 역할을 하게 된 사람 혹은 사회적 자본을 더 많이 획득한 사람에게 그 사회의 권력, 명예, 재산 등이 더 많이 할당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1)의 경우는 이론적으로는 큰 무리가 없는데, 경제학의 "완전경쟁시장이론"처럼 그 함의라는 부분이 협소해 질 수 있을 것 같고
    2)의 경우는 '사회적 자본' 그 자체가 권력, 명예, 재산 등 분배 대상이 되는 가치와 동등한 차원의 가치이지 않는가의 문제가 제기될 것 같습니다. 소개하신 이론들은 '사회적 자본'을 일종의 독립변인으로 보고 여기서의 불평등이 자원분배상의 불평등과 연결된다고 보는 것 처럼 보이는데, 그 반대로 재산, 명예 등의 자원의 불평등이 사회적 자본에도 영향을 끼쳐 궁극적으로 삶의 폭까지 결정하고 만다는 주장을 하는 이론들은 없을지 궁금합니다.

    <참고>로 제가 하다가 접었던 연구는 학급에서의 직접적인 관찰과 싸이월드 일촌여부와 상호방명록 방문빈도 등을 이용한 자료를 비교해서 중학생들의 싸이버 세계에서의 연결망과 현실세계에서의 연결망이 과연 다를지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만, 방법론상의 난점이 너무 많아서 포기했습니다.

    염두에 두었던 생각은 현실에서 경제적, 사회적 자본을 많이 먹은 녀석이 사이버에서도 그러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두고서 사회적 불평등이 사이버 세계까지 이어지는지 여부를 검증하려는 것이었습니다만 지나치게 야심찬 계획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가지 주제넘게 말 남겨서 죄송합니다. 간만에 한국에서 좀체 보기 드문 교환이론, 연결망 이론 관련 관련 포스팅을 보니 조금 업 되어서 그렇습니다.^^
  • 시간 2010/08/21 08:24 #

    컴퓨터를 길게 쓸 수 없는 곳에 있어서 간단히 답해보겠습니다. ^^

    1, 3
    사회자본을 측정하는 연결망 측정방식 (network measure)엔 수십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5-60년대에 개발되었습니다. 직간접으로 연결되는 모든 노드수와 해당 ego와의 거리를 고려 (거리가 멀면 효과를 줄이는 방식)하는 메져에는 Katz, Hubbell, Bonacich, Friedkin, Coleman 등이 개발한 방식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 행렬 연산의 eigen system을 이용함으로써 노드수-거리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러한 방식들은 종속변수가 연결망 내의 개인입니다. 이들이 측정해주는 것은 각 개인의 사회자본의 값입니다.
    제가 최근개발된 방법이라고 했던 것은 종속변수가 연결망 자체인 경우를 말합니다. 이 부분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 해결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2010년 social networks라는 저널에 발표된 Tom Snijder의 dynamic networks에 대한 일련의 논문을 참조하세요.

    2, 4.
    노드수보다 허브가 중요하다고 하신 점은 사회학적으로 매우 옳은 판단이십니다. 그 이유는 사회학자들의 관심은 주로 global network 보다는 local network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연결망 이론이 정착되는 방식이 퍼트남이나 바바라시를 통한 것이어서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듯 한데, 바바라시같은 자연과학자들이 사회학자들을 흥분시켰던 것은, 여태껏 이론적으로 그리고 작은 규모의 완전연결망 데이터로만 검증해온 사회구조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대규모 데이터에서도 똑같이 보여진다는 것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완전경쟁시장이론이 깨름칙하다고 하셨지만, 이를 가정해서 측정한 사회연결망의 파라미터들이 최근 자연과학자들이 측정한 대규모데이터들 (인터넷, 신경망, 공항 ...)가지고 측정한 것과 동일한 값을 가진다는 사실에 사회학자들은 그야말로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게 바로 power law의 exponent 값이었죠). 지난 100여년간의 이론-경험 연구들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를 느낀거죠. 문제는 여전히 사회학자 일반은 자연과학자들만큼 대규모 데이터를 쉽고 빠르게 수집-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거죠. ^^ 그래서 한국같은 경우 카이스트 내 연구 집단과 사회학자들의 공동 작업이 시작되는 분위기 입니다.
    일정 정도 사회적 보상을 받은 사람이 이후에 사회적 보상을 더 많이 받게된다는 아이디어 또한 오래된 것입니다. 로버트 머튼의 matthew effect, 경제학자들의 superstar effect, information cascade ...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지요.
    문제는 이게 사회이론 전반의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건드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건 inequality is natural?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온갖 사회-정치적 이론-운동 들이 바로 이 질문을 기준으로 갈리겠죠.
    인간사회의 변화를 경험적으로 측정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사회연결망 분석은 이 민감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싸이월드 데이터를 가지고 있거나 분석해본 연구자들을 몇몇 알고 있는데, 부정변증법님은 어떻게 데이터를 구하셨는지, 누구와 연구하셨었는지 궁금하군요. ^^ 현재는 싸이월드가 이미 "성숙한" 연결망이라 저는 최근에 tweet을 분석해볼 요량입니다.


  • 부정변증법 2010/08/21 08:52 #

    간단한 답변이 거의 텀 페이퍼(!). 감사합니다.
    싸이월드를 이용한 연구는 이미 6년전의 일이고, 그 때는 싸이가 한창 형성되는 네트워크라 흥미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이용하는게 옳은 판단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트위터의 팔로우어는 좀 생각없이도 추가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이렉트 메시지나 @사용자 트윗을 중심으로 분석해야 할 것 같은데, 정말 어마아마한 작업이 되겠군요.)

    당시의 연구는 모수추정을 하는 연구가 아니기 때문에 특정한 모집단을 잡지 않았고, 당시 제가 사회 수업을 하던 중학교 3학년 학생들 중 자원자 100명을 받아서 시작했습니다. 100명은 한 달간 일촌을 모두 공개하고 방명록에 비밀글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노가다가 100의 승 단위로 진행되고, 또 관찰자의 개입효과를 통제할 수 없어서(즉, 지나다 보니 관찰자가 가장 막강한 허브가 되어버림) 연구를 중단했습니다.

    원래 그 연구를 시작한 동기는 흔히 드라마 등등에서는 부자집에 공부 잘하는 아이가 "왕따"가 되는 경우가 많고, 한국은 잘난 놈이 따되니까 둥글게 살아라 등의 말들을 하지만, 실제 경험적 관찰에서는 결국 있거나, 잘하거나, 예쁜 애들에게 링크가 집중되고, 없고, 못하고, 못생긴 애들이 왕따가 되는 경향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학생 교우관계의 멱함수가 보인 것이고, 허브의 조건이 보인 것이고, 그 조건이 사회적이라고 느껴졌기에 달려 들었는데, 말씀하신대로 이런 데이터를 처리할만한 능력이 없었고, 또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도 주변에 없었고(설문지-코딩-회귀분석이나 로짓분석 에만 너무 익숙해서 처리를 위한 디자인 자체가 안되었음.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연구가 아니었습니다ㅠㅠ)....

    지금까지 해 주신 말씀을 요약하면: 수 명 이상의 사람들(사람이 아니라 사물들일지라도)이 모여서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거기에 어떤 외적인 간섭이 없다면 결국 멱함수가 법칙이기 때문에 불평등은 불가피하다는 매우 민감한 결론에 도달하는군요. 요즘 갑자기 정의론이 열풍을 일으키는 이유도 어쩌면, 불평등이 자연적일 경우 평등의 문제는 이미 사회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윤리학의 문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가지 불편한 상황에서 엄청난 대답을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답글들을 갈무리해서 보관하고자 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 시간 2010/08/21 10:51 #

    이미 연결망 분석에 조예가 깊으신 걸로 보입니다. ^^
    연전에는 유전자나 사회진화론에 기댄 대중서들이 유행하더니
    갑자기 정의론이 또 유행을 하고 ... 생물학자들은 불평등을 인정하는 쪽이거든요.

    이런 점에서 존 롤즈의 정의론이 클래식이 된 것은 정의의 문제를 윤리의 문제로 후퇴시키지 않고
    불평등 (또는 합리적 선택) 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정의 이론을 세웠기 때문이 아닐까요?
    클래식은 그래서 위대하다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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